일제강점기, 무궁화는 꽃이 아니라 민족의 이름이었습니다. 그래서 일제는 무궁화를 뽑아 불태웠습니다.
대한독립선언서를 감싼 무궁화
1919년 한국의 독립을 선언한 대한독립선언서는 태극기와 함께 무궁화 넝쿨로 테두리를 둘렀습니다. 나라를 잃은 시대에, 무궁화는 되찾아야 할 나라 그 자체를 뜻하는 그림이었습니다.
남궁 억 선생의 무궁화 자수 지도
한서 남궁 억 선생은 1910년부터 8년간 배화학당에 교사로 재직하며 무궁화 수본(繡本) 운동을 펼쳤습니다. 학생들이 한반도 지도를 무궁화 꽃으로 수놓게 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운 것입니다.
또 1918년 강원도 홍천군 보리울(모곡)에 학교를 세우고 실습장에 8만 그루의 무궁화 묘목을 심어 전국에 나눠주며 민족혼을 고취하였습니다.
이 일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키우던 무궁화가 모두 소각되고 선생은 갖은 고문을 당하셨습니다.
이를 ‘무궁화 사건(1933)’이라 부릅니다. 선생은 감옥에서 얻은 병환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.
지워진 무궁화
- 일제는 무궁화가 한국 민족의 상징적인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뽑아 불태워 없앴습니다.
- 동아일보 제호에 있던 무궁화 도안도 삭제되었습니다.
- ‘진딧물 꽃’, ‘눈병 나는 꽃’ 등 악의적인 거짓 선전을 퍼뜨렸습니다.
꽃나무가 한 민족의 이름으로 이처럼 가혹한 시련과 수난을 겪은 사례는 없었습니다. 그러나 그 수난을 통해 무궁화는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민족의 꽃, 나라꽃으로 보다 확고히 자리매김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.